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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욥(a.s.)의 질병의 의미

Updated: Apr 11, 2021


두 번째 섬광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إِذْ نَادَىٰ رَبَّهُۥٓ أَنِّى مَسَّنِىَ ٱلضُّرُّ وَأَنتَ أَرْحَمُ ٱلرَّٰحِمِينَ

“욥을 상기하라 그는 주님께 간구하였노라. ‘재앙으로 제가 괴롭나이다.

당신은 가장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시니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1


인내의 영웅인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이 애원함은 이미 경험한 것이며 또한 효과적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애원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며


رَبِّۤى اَنِّى مَسَّنِىَ الضُّرُّ وَاَنْتَ اَرْحَمُ الرَّاحِمِينَ

“주님! 재앙으로 제가 괴롭나이다. 당신은 가장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시니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2


라고 해야 한다.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잘 알려진 이야기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오랫동안 수많은 상처로 고통받으며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한 큰 보상을 생각하며, 완전한 인내로 참고 견디며 지냈다. 그 후 자신의 상처들로부터 나온 기생충들이 하나님을 알고 기억하는 기관인 심장과 혀에 영향을 미치자 숭배를 행할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님! 재앙으로 제가 괴롭나이다. 혀로 당신을 암송하는 데, 심장으로 당신을 숭배하는 데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3


라고 하며 간절하게 애원하였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이 순수하고 진실하며 전혀 다른 의도가 없는 하나님을 위한 그 간절한 애원을 상당히 놀라운 형식으로 받아들이셔서, 그는 완벽한 건강을 부여받아 모든 종류의 자비에 맞는 대상이 되었다.


이 섬광에는 다섯 가지 관점이 있다. 4


첫 번째 관점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겉으로 보이는 상처와 아픔에 상응하는 우리의 내면적인 정신과 마음의 아픔이 존재한다. 만일 우리의 겉을 안으로, 안을 겉으로 바꾸어 본다면,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보다 더 심한 상처와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죄, 우리의 머리속에 들어오는 모든 의심은 정신과 마음에 상처들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상처들은 단지 이 짧은 현세의 삶을 위협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상처는 무척 긴 영원한 삶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예언자 욥(그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보다 수천 배 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그분의 상처에서 나온 기생충들이 심장과 혀에 파고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죄들로부터 생긴 상처들과 그 상처들로부터 발생한 의심들과 사탄의 속삭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길!) 신앙의 장소인 심장의 내부를 파고들어 신앙에 상처를 입힌다. 신앙의 통역자인 혀의 정신적인 기쁨에 또한 파고들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혐오하게 만들어 멀어지게 하며 그만두게 만든다.


그렇다. 죄는 심장을 파고들어 검게 만들며 신앙의 빛이 꺼질 때까지 딱딱하게 만든다. 각각의 모든 죄는 불신으로 이끄는 길이 있다. 만일 그 죄로부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빨리 없애지 않으면, 기생충이 아니라 정신적인 뱀처럼 커져 심장을 갉아 물어버릴 것이다.


예를 들면, 수치스러운 죄를 남몰래 지은 사람이 만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될까 봐 창피함을 느낀다면, 그때 천사들과 영혼들의 존재함이 그에게 무척 부담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아주 조그마한 표시로 그들을 부정함을 원하게 한다.


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만한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대한 경고를 들으면 들을수록 (용서를 구함으로써 피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지옥이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며 아주 조그마한 표시나 의심이 지옥을 부정할 수 있게 용기를 부여하게 한다.


또한, 의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며 숭배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되기 때문에 자기 상사로부터 야단을 받고 마음이 아픈 것처럼, 영원한 과거와 미래의 왕의 반복적인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의무행위들에 대한 자신의 게으름이 그에게 매우 괴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 괴로움으로 인해 마음속으로 ‘이러한 숭배 의무가 없었더라면!’하는 바람으로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느끼게 되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바람이 생기게 된다.


만일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해 어떠한 의심이라도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다면, 완전히 확실한 증거처럼 그에게 다가오게 되어, 소멸하게 만드는 큰 길이 그에게 열리게 된다. 그 불행한 사람은 숭배의 의무로 인한 아주 조그마한 부담 대신 그 부정으로 인해 생기는 그 조그마한 부담보다 수백만 배 더 심한 공포스러운 정신적인 부담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즉 모기에게 물리는 것을 피하다가 뱀에게 물리는 꼴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다른 것들도 위의 세 가지 예들과 비교하면,


بَلْ رَانَ عَلٰى قُلُوبِهِمْ

“그들의 마음들은 죄악으로 물들어 있노라”5


라는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두 번째 관점

리살레이누르 26번째 말씀에서 운명의 비밀에 관해 설명했듯이 고난과 아픔들에 대한 세 가지 측면에서 사람들은 불평할 권리가 없다.


첫 번째 측면: 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사람에게 입혀주신 신체라는 옷으로 그분의 예술을 보여주고 계신다. 인간을 모델로 하여, 그 신체라는 옷을 자르고, 다듬고, 바꾸고, 고치시며 다양하고 아름다운 이름들의 징후를 보여주신다. ‘치료하시는 분(Şafi)’이라는 이름은 아픔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Rezzak)’이라는 이름 또한 배고픔을 필요로 한다.


مَالِكُ الْمُلْكِ يَتَصَرَّفُ فِى مُلْكِهِ كَيْفَ يَشَۤاءُ

“재산의 주인은 자신의 재산에 대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6


두 번째 측면: 삶은 고난들과 아픔들로 인해 정제되며, 완성되며, 강해지며, 발전되며, 결실을 맺으며, 완벽해지며,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게 된다. 편한 소파에 앉아 있는 단조로운 삶은 완전히 좋은 것인 “존재함”보다 완전히 나쁜 것인 “없음”에 가까우며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세 번째 측면: 이 세상의 영역은 시험의 장이자 근무하는 곳이며 즐거움, 보상, 보수를 받는 장소가 아니다. 이 세상이 근무하는 곳이며 숭배의 장소라면 질병들과 고난들은 (신앙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인내한다는 조건 하에) 근무와 숭배의 의미에 적합하게 되며 강화되며, 이때의 매시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므로 불평하지 말고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 경배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긍정적인 부분이며,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부분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잘 알려진 것7이다. 부정적인 부분은 질병이나 고난으로 고통받는 자기 자신의 무능력과 빈곤을 느끼며 자애로운 주님께 피난하면서 그분에게 향하며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에게 애원하며 순수한 숭배를 행하는 것이다. 이 숭배에는 과시적인 행동이 들어갈 수 없으며 순수하다. 만일 인내하며 고난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고 감사한다면, 그 순간 한 시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어 이 짧은 삶이 긴 삶으로 바뀌게 된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일 분이 하루의 경배로 간주되기도 한다.


어느 날 나의 내세의 친구인 무하지르 하프즈 아흐멧(Muhajir Hafız Ahmed)의 매우 심한 병에 대해 무척 걱정하고 있을 때, 나의 마음에 경고를 보내어 주셨다. “그를 축하하게! 각각의 일 분은 하루의 경배로 간주된다네.” 그렇지 않더라도 원래 그는 인내하며 감사하며 지내고 있었다.




1 꾸란 21장(안비야) 83절

2 꾸란 21장(안비야) 83절

3 하디스 부하르가 전함, Tevhid, 35

4 원본에는 총 다섯 가지 관점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중 두 번째 관점까지만 언급

5 꾸란 83장(무따피핀) 14절

6 (참고) 꾸란 3장(이므란) 26~27절

7 예배, 단식, 회사, 두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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